해외 지식인들 한국 저출산 관련 훈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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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률을 끌어올리기 위한 정부의 정책은 단기적으로 출산율을 증가시키는 데 그칠 것이라고 봤다. 왜 그런가.
“한국 정부가 출산율을 높이는 방법을 찾기 위해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을 안다. 비단 한국 정부만이 아니라 미국과 유럽 정부도 무료 또는 저렴한 보육, 신생아 수당 제공 등 출산 가정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식의 조치를 내놓았다. 정부가 모든 종류의 출산 장려 정책을 내놓으면 출산율은 아마 조금은 올라갈 것이다.
일부 가족은 ‘저렴하게 보육할 수 있으니, 아이를 낳겠다’고 생각할 테니까. 하지만 이런 효과는 단기간에 그치는 경향이 있고 출산율은 머지않아 대체출산율보다 낮은 수준으로 돌아간다. 정치인들은 사람들이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가 ‘경제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라고 믿지만, 이건 부분적인 이유일 뿐이다. 프랑스를 보라.
프랑스는 수년 동안 출산을 장려하기 위해 수십억 유로를 지출했다. 하지만 프랑스의 합계출산율은 대체출산율보다 낮다. 프랑스의 인구가 늘고 있는 건 출산율 증가가 아닌 이민 때문이다.”
─인구가 줄어들면 모든 도시가 당신이 말한 ‘축소 도시’가 되나. 축소 도시란 뭔가.
“짧은 시간에 인구가 줄어드는 도시를 말한다. 나는 미국, 유럽, 일본에서 수년 동안 축소 도시를 살펴봤다. 오랫동안 나와 동료들은 도시의 인구가 줄어드는 것을 이상한 현상으로 여겼다. 하지만 5년 전부터 축소 도시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고, 인구 통계 등을 분석한 결과 축소 도시는 더 이상 예외가 아니라 표준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는 더 이상 성장하지 않는 세상에 살고 있다. 이것이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다.”
─축소 도시 간에도, 도시 내에서도 불평등이 심화한다고 했다.
“경제 성장이 이뤄질수록 불평등을 완화하기는 더 쉬워진다. 정치적으로나, 문화적으로 파이가 크면 클수록 누구의 것도 빼앗지 않고 자원을 재분배하기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파이가 작으면 누군가의 자원을 빼앗아야만 자원을 재분배해야 한다. 이렇듯 인구가 감소하면 경제가 성장할 여지가 줄고, 모든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이 점점 줄어들기에 불평등은 심화할 수 있다.”
─축소 도시가 표준이 된 세상에서 한국에 남길 조언이 있다면.
“인구 감소는 되돌릴 수 있는 과제가 아니다. 이제는 어떻게 하면 인구가 감소하는 상황에서도 잘 작동하는 건강한 도시를 만들지 고민해야 한다. 2002년부터 2019년까지 한국의 86개 도시 중 31곳에서 인구가 줄어들었다. 그중 절반에 해당하는 도시 인구는 10% 이상 감소했다. 서울을 중심으로 한 일부 지역의 경제는 인구가 감소하더라도 계속 성장하겠지만, 다른 지역은 역성장할 것이다.
기본적으로 변화를 거부하는 것이 사람의 본능이지만, 시대가 변했고 인구 감소가 곧 새로운 현실이라는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인구가 감소하더라도 건강한 지역 경제와 지역 사회를 만들 수 있을지 정부와 주요 대학이 고민해야 한다. 그래야 수많은 축소 도시가 경제 위기, 정치적 혼란 속에서 새로운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축소 도시는 중앙 정부나 지방 정부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지만, 자신의 역량과 자산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이를 위해 공공 부문과 민간 부문의 협력, 주민과 민관 지도자의 의사소통, 지역 사회의 인적 자본을 구축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책에서 한국보다 앞서 저출산에 직면한 일본은 생산시설 이전을 통해 노동력 부족 문제를 극복했다고 했다. 또한, 한국과 대만도 최첨단 시설을 미국으로 이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유가 뭔가.
“일본은 인구가 줄어든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아무도 인구 감소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때 생산 시설 이전을 시작했다. 일본 기업은 2006년부터 생산 시설 대부분을 다른 나라로 이전해 해당 지역의 노동력을 이용해 상품을 생산하고 그 상품을 해당 지역에 판매했다.
여기서 올린 매출 일부를 일본으로 보내 고령화하는 일본을 부양했다. 일본은 미국이 자국 시장에 상품을 덤핑하는 행위를 질색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수십 년에 걸쳐 일본이 겨냥한 시장 내에서 상품을 제조하는 노력을 기울인 것이다.
이런 새로운 산업 모델 덕분에 일본은 어느 정도 곱게 나이들 수 있었다. 일본처럼 산업 시설의 해외 이전을 시도할 만한 숙련 기술 인력과 자본을 보유한 나라는 한국, 대만, 싱가포르, 영국 정도다. 한국이 생산 시설 일부를 해외로 이전했지만, 고부가가치 산업은 이전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한국 경제에 대한 사고방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생산 거점을 미국으로 옮겨야만 한다는 건가.
“전 세계적으로 소비 수요가 줄어들고 있다. 그리고 고령화 심화에 따라 향후 15년 안에 대부분의 수요처가 사라질 것이다. 한국과 대만이 물건을 수출할 수 있는 곳은 북미와 동남아, 두 곳뿐인데 동남아는 미국과 일본의 놀이터가 될 것이다. 따라서 어떤 식으로든 미국의 안보와 경제적 이익을 저해하지 않는 선에서 움직여야 한다.
앞으로 독일, 이탈리아, 폴란드, 네덜란드 등도 모두 이 작업을 수행해야 하기에 더 큰 비용이 들고 경쟁이 치열해질 거다. 따라서 미국이나 멕시코처럼 인구 증가세가 견고한 국가와 거래를 체결해야 한다. 미국이 가장 큰 시장이긴 하지만 유일한 나라는 아니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미국, 캐나다, 멕시코 등 북미 3개국이 체결한 자유 무역 협정)에 따라 미국 소비자에게 접근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멕시코를 주의 깊게 바라본다.
다만, 멕시코 북부 노동력 대부분은 미국 기업에 잠식됐다. 이제는 멕시코 중부로 가야 한다. 캐나다도 인구가 많고, 인프라가 잘 구축된 프레리 등 유망한 지역이 많다.”
─북미 지역을 제외한 생산시설 이전 유망지를 꼽으라면
“북미를 제외하면 인도가 가장 큰 소비 시장이지만, 인도에서 사업을 하는 것은 골치 아픈 일이다. 인도는 서로 느슨하게 연결돼 있을 뿐 30개의 서로 다른 경제권으로 이뤄져 있다. ‘10억 명의 소비자’라는 문구에 현혹되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대신 베트남과 인도네시아가 더 나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베트남 경제는 농업 중심에서 중공업 중심으로 발전했고, 이제는 첨단 제조업 경제로 가려 한다. 베트남 대학 졸업생의 40%가 STEM(과학·Science, 기술· Technology, 공학·Engineering, 수학·Mathematics) 전공자다. 인도네시아도 유망하다. 기술 수준은 낮지만, 25억 명이 넘는 노동력이 존재한다. 지금 한국이 필요로 하는 요소를 갖춘 비옥한 땅이다. 특히 조립 등의 분야에서는 중국보다 인도네시아가 낫다고 생각한다.”
─결국 출산율 저하를 막기 힘드니, 인구 감소에 대비할 경제 체제를 구축하라는 뜻인가.
“한국의 경제 모델은 기본적으로 가격 대비 훨씬 더 숙련된 노동력을 바탕으로 고부가가치 상품을 대량으로 생산하고 이를 젊은 층이 소비하도록 수출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모델은 미래가 없다.
지난 세기 동안 인구가 감소했다가 다시 대체출산율(인구가 현 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 출산율로 여성 한 명이 가임기간에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가 2.1명이어야 함)까지 올라간 사례는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새로운 경제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한국은 제조와 관련한 많은 생산 단계를 한국 안에서 수행하기를 원하지만, 앞으로 나아갈 방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이 멕시코, 인도네시아, 베트남과 하도급 계약을 맺는 등 경제 통합을 이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구가 고령화할수록 이 문제는 더 중요해질 것이다.”